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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정보

방언과 기도(고전 14:26~28)

by 모든 정보 나눔 2020. 2. 1.

방언과 방언 기도(고전 14:26~28)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방언 기도는 오해가 많다. 방언하고 싶다고 하는데 방언은 입을 열어야 한다. 방언 기도를 바로 이해하면 방언기도를 하게 된다.  우리 교회안에서는 방언기도라고 해야 한다.

지방 말 사투리를 방언이라고 한다. 행 2:장에서 하는 방언은 다른 말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였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지금 우리가 구하는 방언은 이 방언이 아니라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방언 기도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하는 기

도가 아닌데 구태여 이런 방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방언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대화이다.

 

성경에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성령께서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탄식하심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다. 방언 기도는 언어가 아니라 소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 기도를 나라의 언어로 이해하고 들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언을 하지 못하는 것은 방언 기도를 각 나라의 방언 곧  외국 말로 하려고 의도적으로 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혹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자신의 하고 있는 방언기도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 어떤 분은 하나님께 자기의 방언을 영어나 자기가 원하는 나라 말로 주시기를 구한다고 한다. 

 

방언은 언어가 아니라 소리이기 때문에 어떤 소리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나의 이성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면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는 어떻게 나오는가?

(하비 코스 신학자.)는 말하기를  자신의 간절한 마음으로 다 표현할 수 없고  사람의 언어로는 다 아뢸 수 없어서 나오는 것이 방언기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방언의 소리가 어떻게 나오던지 그것에서 자유함을 느껴야 방언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창세기 아벨탑 사건을 기억하라.

방언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언어를 혼잡하게 바꾸셨다. 

 

교회가 분리되는 것은 사단의 역사가 있는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하나로 영으로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방언이다. 

육으로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합해야 한다.  방언은 사모해야 한다. 영적으로 충만해야 한다.

 

주께서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자가 일어나고 새 방언을 말한다고 하셨다.. 영의 충만함을 위한 기도이다.

 

육적인 구함과 혼적인 구함이 있다. 배가 고푸면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을 추구하는 것, 육적인 것이 필요하므로 구하는 것은 마음의 기도이다. 


방언 기도는 영적인 것을 구하는 것이다.

방언 기도는 영적인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내 영이 구하는 것은 혼과 육이 몰라도 된다.  방언 기도는 영의 요구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배가 고풀때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육에서는 그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욕구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우리의 몸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이 갈하므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우리의 육은 영이 갈한 것을 알아내기가 어렸다. 영이 갈하고 배고픈 것을 육체적으로는 알려줄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이 배고프고 갈한 것을 탐지하고 그것을 충당하기 위하여 할수 있는 것이 기도인데 우리는 가끔씩 기도를 하다가 보면 기도의 방향이 온전히 육신적인 것에 맞추어 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사도행전 9장에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고 있다. 이것은 그의 육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믿고 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울이 회개하고 돌아서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 

 

 그의 몸이 육적인  율법의 지배를 받고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져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가고 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사울의 의도와는 달리 그를 강하게 지배하셨다.

 

방언도 그렇다 우리의 육적인 것을 제하고 영적인 기도로 강권적으로 우리의 입을 막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해 가시는 것이다. 

 

사울이 육으로는 율법을 원하고  영은 그리스도를 갈망했다. 그러나 강권적인 하나님의 영이 그의 육체의 모든 것을 철저히 막으셨기  때문에 주님을 만났다.

 

이와 같이 혼과 육과 달리 그 속에 영이 갈망 하는 것은 다르다 이것을 위하여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방언기도이다. 

방언 기도는 내 영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방언은 어떤 자가 받는가?

방언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자가 받는다.  비록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저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순종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알아서 부모에게 구하지는 않는다. 그저 필요하니까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기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언 소리에 따라 거짓과 참이 밝혀진다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방언은 수백 수천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처럼 아름다운 것만 말이고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그런 괴상한 소리를 지른 것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방언은 사용해야 한다. 입을 열어라. (막1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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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 영으로 함께하는 자에게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롬 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주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를 알고 믿었기 때문에 그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영으로 기도하면 된다.

 

지금 기도하면 된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내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물에 빠지게 된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물 위에 뜬다. 대부분 익사 사고가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주라 할 수 없느니라.  방언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