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을 앞둔 영화 '하이재킹'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하이재킹'의 배경이 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영화 하이재킹 실화)
목차
-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은?
-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개요
-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범행 동기는?
-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이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은?
1971년 1월 23일 오후 1시 34분경 승객 55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운 속초공항 발 김포국제공항 행 대한항공 소속 포커 27이 홍천 상공에서 납치범 김상태에 의해 하이재킹 당한 사건입니다.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은 영화 같은 내용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며 최근 2024년 6월 21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하이재킹’의 모티브가 된 사건입니다.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개요
1971년 1월 23일, 오후 1시 7분 폭탄으로 무장한 범인 김상태와 54명의 승객, 그리고 승무원 5명과 함께 포커 27 여객기는 속초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이륙한 지 27분이 지난 1시 34분경 포커 27 여객기에서 2개의 폭탄이 폭발했습니다. 이 폭발로 기체에 20cm가량의 큰 구멍이 나고 이륙할 때 잠가 놓았던 조종실 문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조종실 문이 부서지자 김상태는 남은 폭탄 2개를 들고 조종실로 들어가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온 놈이다. 북으로 기수를 돌려라!"라고 조종사들을 협박했습니다. 이강흔 기장은 일단 김상태의 협박에 순응하는 척하며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는 한편 착륙지점이 북한인척 속여서 비상 착륙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후 이강흔 기장은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 해변에 낮게 접근하면서 '북한에 다 왔다' 착륙하려고 했습니다. 착륙하려던 순간, 김상태가 거짓말임을 알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이강흔 기장이 착륙하려는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가 김상태의 고향이었던 것입니다. 김상태가 착륙하려는 곳이 북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포커 27 여객기 계속 북한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승무원과 승객들은 객실에서 비극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승무원인 최석자와 항공 보안관 최천일은 몰래 조종실과 인터폰으로 연락하며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은 승객들에게 범인을 속이기 위해 크게 통곡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또한, 북한에 들어왔으니 증명서를 모두 찢어버리라는 거짓 기내 방송도 했습니다. 또한, 이강흔 기장은 급하게 출격한 공군 F-5를 북한군 미그기가 마중 나왔다고 속였습니다.
참고로 F-5는 1968년에 대한민국 국군이 도입한 전투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으로 인해, 이 기종은 1971년까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외형의 신형 기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김상태는 이 전투기가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기라는 것을 모른 채, 정말로 미그기라고 믿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장, 승무원, 승객들등 모두의 노력과 기지로 김상태는 결국 속아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항공 보안관 최천일은 승객들을 달래는 척하며 김상태에게 천천히 접근했습니다. 김상태가 F-5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항공 보안관 최천일이 권총을 뽑아 김상태를 사살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상태가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가지고 있던 폭탄이 바닥으로 떨지면서 안전핀이 풀렸고 위기 사항이 발생하자, 옆에 있던 수습 조종사 전명세가 자신의 몸으로 폭탄을 덮어 폭발을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그의 희생으로 기체에 큰 타격을 막았으나 팔다리가 절단되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전명세 수습 조종사의 희생이 없었다면, 여객기는 추락해 모든 승객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전명세 수습 조종사의 희생으로 인해 간신히 공중분해를 면한 포터 27 여객기는 오후 2시 18분에 휴전선 근방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바닷가 모래사장에 기적적으로 불시착하였습니다.
다행히 승객들은 대부분 가벼운 부상만 입었지만, 폭탄을 몸으로 막았던 전명세 수습 조종사, 이강흔 기장, 객실 승무원 최석자 등 총 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전명세 수습 조종사는 폭발을 막다가 왼팔과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전명세 조종사는 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던 도중에도 “승객이 위험하다. 폭탄! 폭탄!”이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이 마지막 말은 전명세 수습 조종사의 유언이 되었고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하였습니다.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범행 동기는?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범인 김상태는 당시 22세였으며 무직이었으며 거진읍 거진3리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김상태가 대한항공 F27기를 하이재킹 한 범행동기는 그가 사살되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상태가 납북에 성공한 공작원들이 북한에서 대접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초기에 김상태를 고정 간첩으로 방향을 잡고 수사를 했습니다. 당시 김상태가 1969년 6월부터 무직인 상태로 갑자기 윤택하게 살았던 정황, 북한의 비행장 위치 등에 대한 지식, 그리고 맏형이 6·25 때 월북하여 북한군이 된 점 등의 이유로 그를 고정간첩으로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수사 결과, 김상태가 간첩이 아니며 이 사건이 북한의 대남도발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김상태는 사제 폭탄을 만드는 법을 자기 집에 세든 청년에게 5000원을 주고 배웠으며 소형 어선 엔진에서 사용하는 발동기 시동화약과 어린이 딱총용 화약으로 폭발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이후
수습 조종사 전명세는 순지후 정식 조종사로 추서 되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일등 보국훈장과 조종사 정복을 받았습니다. 여담으로 장례식 때 그의 형이 당시 대한항공 전무이사 전명섭이었음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이강흔 기장은 이 사건으로 왼쪽 눈을 크게 다쳐 1.2 정도였던 시력이 0.3으로 떨어졌지만 치료 후 대한항공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B727, DC-10, B747-200 등을 조종한 후 조종사로서 정년 퇴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