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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정보

두 종류의 방언(고전 14:1~28)

by 모든 정보 나눔 2020. 1. 29.

방언은 왜 필요한가?(고전 14:1~28)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은사를  구하고  특히 예언하기를 사모하여야 한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 

 

이는 아무도 알아듣는 자가 없다. 이는 성령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은 방언을 인정하는 교회도 있고 방언을 금지시하는 교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방언은 분명히 성경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받지 않았다고 해서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 된다. 방언은 각 개인에 따라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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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필요에 따라 주신다.

나 개인은 어려서 방언을 받았다.첫 번째 방언은 부흥회를 통하여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교회에서 금지시하였고 방언을 하는 사람은 이단으로 몰릴 때였으니 방언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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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성령의 은사는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임하신다. 나는 엄격한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해서 소멸되었다. 

 

두 번째 방언 회복은  철야를 하면서 받았다.  방언의 소중함을 알고 난 후 받은 것이기에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하나님이 주신 방언을 계속했다. 

 

혼자서 기도하고 철야를 할 때  하나님이 주신 방언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방언을 계속하던 중에 나 자신의 방언이 통역이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방언을 통역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사람의 방언을 통역할 필요도 없다.

나와  하나님과  은밀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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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는 두 가지의 방언이 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방언은 각 나라의 방언이다.  이것은 때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때에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임재하셔서 분명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하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의 말로 들려지는 것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방언을 이런 것으로 오해를 하기 때문에 방언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구하는 방언은 이런 나라 방언이 아니라 하나님과만 소통할수 있는 방언을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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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것을 우리는 나라 방언이라고 한다. 이 방언은 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된 선교사님들에게나 사역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방언은 계속되는 것은 아니고 일시 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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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것은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하나님과 나만 아는 방언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말을 배울 때 무슨 말인지 모르고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듯이 방언도 그렇다.

 

계속해서 하다 보면 정말 기도가 재미있다. 마치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데 그 둘 만의 비밀스러운 암호가 있듯이 방언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정말 비밀스러운 것도 다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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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도 인격적이다.

그러나 방언도 인격적이다. 모독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받지 못해도 분명히 이 세상에도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어떤 분은 방언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분들은 하나님 앞에 가서 당신의 말한 것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적인 것의 무한함을 우리 인간의 머리로 얼마나 헤아리고 분별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분들은 방언을 받아 보고 나서 말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방언을 할 때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연인들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때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그 사랑의 표현은 둘 만이 있을 때에 해야 한다. 두 사람에게는  사랑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한 것이 되고 보

기 싫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만 잘 지켜진다면  방언은 정말 중요한 것이 된다. 모든 은사는 방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만 덕을 세우고  사도바울도 모든 사람이  다 방언으로  말할 수 있기를 원한다. 나 바울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 은사를 더욱 풍성하게 받기를 사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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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기의 방언을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통역을 받지 아니하고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은  기도하지만  나의 이성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이성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이성으로 찬송하겠다.

그러므로 방언은 불신자들에게 주는 표적이다.

 

만약 교회에게 방언을 할 때는 통역하는 사람이 없거든 하지 말아야 한다.  혼자서 조용히 기도할 때 사용해야 한다.

 

새벽기도 시간에 은밀하게 기도해 보라. 기도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른다.  하나님과 이런 사랑을 나누고 싶다면 방언을 사모하여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