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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정보

약속,(창16:1~10)

by 모든 정보 나눔 2020. 4. 26.

약속이 길어질 때(창 16:1~10)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하갈이라고 하는 이집트 사람 여종이 있었다. 고대인들은 자식 없는 것을 신의 저주로 여겼다.

 

무자했던 사라는 자식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 채 자신의 수단과 방법으로 저주를 벗고자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신의 여종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고자 하였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여기서부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어졌다. 사래가 하나님의 약속을 깨뜨리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아담을 잠재우신 후에 그의 갈빗대를 뽑아서 여자를 만드셨다. 그리고 아담에게 함께 살게 하셨다.

 

하와가 뱀의 꼬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만으로 끝 아지 않고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하였다. 이것인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창 3:6)

남자들은 참으로 단순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항상  그의 어머니는 누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여자의 믿음과 교육이 중요함을 보여 주고 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의 여종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십 년이 지난 뒤이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나의 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더니, 그 종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멸시합니다. 주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사래가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첩으로 삼게 하므로 모든 그때부터 가정은 갈등에 휘말렸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좇지 않을 경우 고통스러운 문제가 발행할 뿐이다.

 

지금 우리도 이 같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피하려고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되면 순간은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결국 더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래가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괴로움을 해결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이로 인하여 하갈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 큰 더 큰 고통에 처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고통스럽게 되자 결국 또 생각해낸 것이 하갈을 학대하여 내쫓아 버리는 큰사래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하갈은 도망을 한다. 우리는 하갈을 보면서 자신의 신분이 바꾸어지면 이처럼 철저히 변하는가 생각하여 보았다. 분명 하갈은  사래의 종이 었다.

 

그러나 하갈이 은혜 룰 베풀어 자기 남편의 아내로 소개하여 주었다. 이것은 분명히 하갈을 종의 신분에서 자신가 같은 위치로 바꾸어 주었다.

 

그러나 하갈은 자신이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완전히 변해 버린 것이다.일들을 하게 되었다. 아마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로 말하면 가정 불화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분명한 것은 사래의 은혜를 깨닫고 전처럼 주인으로 모셨다면 지금 모든 문제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갈은 사래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도망을 쳤다. 

 

주의 천사가 사막에 있는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났다. 그 샘은 술로 가는 길 옆에 있다. 천사가 물었다.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갈이 대답하였다.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

 

주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 주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우리는 때로 이같이 지금의 상황에서 도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도망한다고 문제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때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지금 하갈과 같이 도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번 하나님의 택함을 입고 은혜를 받은 자는 결코 하나님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나의 문 앞에서 두드리시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하갈에게 돌아가 네 주인에게 복종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비록 아브라함과 사래가 잘못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을 불쌍히 보셨다. 그래서 사래에게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다. 하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의 여주인인 사래에게로 돌아갔다.

 

거기서 하갈은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어떻게 보면 하갈은 자신의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의 말대로 아브람과 함께 동거하므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아브라함과 사라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잘못하여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에 대한 보응 즉 잘못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아브람과 사라가 져야 한다. 아담이 범죄 하므로 우리 모든 인류에게 원죄를 안겨준 것같이 아브람과 사래 역시 아담과 같이 이런 고통을 남겨 주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을 생각하여 행한 것에 대한 책임이다. 지금 이 두 아들의 후손들이 끊임없이 대립하며 원수가 되어 싸우고 있다. 이것이 약속을 어긴 대가이다. 

 

지금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는 모르고 살았다. 그에 대한 징계를 지금 우리는 겪고 있다.

10.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가운데서라도 누가 성전 문을 닫아 걸어서, 너희들이 내 제단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나는 너희들이 싫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도 이제 나는 받지 않겠다.(말 1:10)

죄악을 범하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코로나라는 질병을 들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막으셨다. 어쩌면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되어 보이지는 않았나 생각하여 보자.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고 하셨다. 가증스러운 죄를 범하고 있는 그들을 위하여 누가 성전문을 닫아 걸어서 우리의 예배를  막아 주면 좋겠다고 하신 것은 아닐까? 

 

이번 기회를 통하여 생각하자. 그래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다. 우리를 적들에 손에 넘겨주지 않으시고 전쟁으로 우리를 징계하지 않으시고 코로나를 통하여  이렇게나마 깨닫게 하여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야곱을 좋아한다. 야곱처럼 빨리 돌아가야 한다. 온전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자.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이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더 큰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