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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정보

징계하지마세요(시6:1~10)

by 모든 정보 나눔 2020. 4. 8.

징계하지 마세요(시6:1~10)


징계하지 마세요(시6:1~10)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다만 자신을 너무 심하게 다루시지 않기를 원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변명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내게 노하지 마십시오. 내가 잘못할 줄 아오니 이제 화를 내어 진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내가 이미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줄 아오니 나를 징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이제 내가 내 기력이 쇠하였고 수척하여 살 수 없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 이젠 두렵고 떨리므로 다리가 흔들리듯이 내 뼈가 떨리오니, 하나님, 이제 그만 화를 내시고 나를 고쳐 주십시오.  언제까지 하나님 나에게 화를 내시며 나를 버려두시겠나이까?

 

하나님이여 이제 나에게 돌아오셔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의 영혼을 건져 주시옵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이제 구원하여 주옵소서 하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믿는 자를 징계하시는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교정을 하신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과도한 징계를 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징계 앞에서는 곧 회개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립니다. 주께서는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 돌아와 주십시오, 주님. 내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그런데 이 아들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같은 잘못을 해서 벌을 받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행위다.  큰 아들은 잘못을 했을 때 그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할 때 그저 묵묵히 그것을 다 받는다.

 

그런데 엄마의 마음에서는 차라리 빨리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잘못을 빌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아들은 그저 때리면 그대로 맞고 있다.

 

어쩐 면에서는 순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에서는 그런 것을 원치 않는다. 빨리 잘못을 빌면 때린 매도 적게 때릴 수 있다.

 

인정하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라리 잘못했다고 비는 아들이 더 좋을 것 같아. 둘째 아들의 경우다 이 녀석은 잘못을 해서 추궁하기만 해도 그저 두 손을 들고 빈다.

 

마치 매를 맞는 것보다 더 소리를 내며 운다.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손을 들고 싹싹 빌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한다.

 

매을 든 나의 손을 붙잡고 매달리면서 우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찌 때릴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그래서 그 녀석은 결국 매도 안 맞고 끝이 난 적도 있다. 

 

다윗도 이런 것 같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줄 알고 있다. 이제 매를 맞을 줄도 안다. 그러나 매를 맞으면서 살려 달라고 한다.

 

하나님의 근본이신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으로 나를 구원하여 달라고 한다. 마치 아이가 매가 무서워 우는 것과 같다. 맞기도 전에  목이 쉬도록 빌면서 부르짖다가, 이 몸은 지쳤다고 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매를 적게 맞은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눈이 빠지도록, 나는 혼날 줄 알았지만 나는  하나님을 기다렸다고 한다. 난 이 장면을 상상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마치 둘째 아들이 나에게 매달리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다윗을 보고 하나님이 어떻게 징계를 심하게 할 수 있었을까? 나라도 못했을 것 같다. 

 

다윗은 심지어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마치 아버지 앞에서 하는 것처럼 자기가 죽어서는. 아니 만약에 내가 죽으면 지쳐서 죽어 버리면 차라리  아무도 하나님을 도 기억하지 못하고 잘못을 깨우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반 협박 같은 기분이 든다. 하나님 내가 살아야 이제 고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는 말이다. 마치 지가가 살아야 잘못도 고칠 수 있지. 죽은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이런 고백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다. 

 

 삶이 너무 힘들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너무 싫어서 하나님께 하나님 차라리 나를 데려가 달라고 그러면 이렇게 괴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죽음을 겪어 보지 않아서 죽음의 끝을 아직 몰랐을 때였다.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줄 알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의 끝에 오는  무서운 심판을 알기에 이런 기도를 할 수 없다.

 

구약 시대에는  내세가 없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다윗도 그런 뜻에서 자기가 살아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스올에서, 누가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탄식만 하다가 지치고 말았습니다. 밤마다 짓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잠자리를 적십니다.


사무친 울화로, 내 눈은 시력까지 흐려지고, 옆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대적들 등쌀에 하도 울어서 눈이 침침합니다. 많이 울면 시력도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이제 다윗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 이제 그는 마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  무모에게 맞았던 일을 잊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사달라고 천진난만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기를 괴롭히던 자들에게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악한 일을 하는 자들아, 나를 괴롭히는 모든 자들아 모두 다 내게서 물러가거라.

 

이제 하나님께서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다 용서하여 주셨다. 그러니 너희들이 하나님께 고자질하여도 나를 정죄하기 위하여 고소하여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용서를 받은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죄가 우리에게 들어왔을 때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들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다.

 

이제 마귀 사탄들이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당히 이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용서를 받은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당당히 말한 것이다. 


주께서 내 탄원을 들어주셨다. 마치 어린아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기뻐 뛰는 것 같다.  주께서 내 기도를 받아 주셨다. 이제 너희가 아무리 나를 해하려고 하여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내 원수가 모두 수치를 당하고, 나의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떠는구나. 그들이 나를  고자질하려고 왔다가 낙담하며, 황급히 물러가는구나. 다 도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당당히 이제 살아 가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아멘 할렐루야 외치며 담대히 살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