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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정보

눈동자 같이 지키소서(시17:1~15)

by 모든 정보 나눔 2020. 4. 12.

눈동자 같이 지키소서(시17:1~15)


1~8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 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눈동자 같이 지키소서(시17:1~8)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하나님, 나의 옳음을 변호하여 주십시오. 다윗은 자신의 정직이 행하였음을 인정해 달라고 하고 있다. 참 정직하게 살지 않으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없다. 

 

자신이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 나의  이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들으시고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 친히 나를 판단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눈으로 공평하게 살펴보아 주십시오. 주께서는 나의 마음을 시험하여 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시며 단련시켜 보셨지만 내 잘못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내가 입으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야 어떠했든지, 나만은 주께서 하신 말씀을 따랐기에, 약탈하는 무리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내 발걸음이 주의 발자취만을 따랐기에, 그 길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을 부르니, 내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귀 기울이셔서, 내가 아뢰는 말을 들어주십시오.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는 히브리어로 이숀이라 한다. 이순은 작은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것은 눈에 비친 작은 사람의 형상을 보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라 말하게 된다. 

 

이것은 모성애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사랑이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를 보면서 천진난만한 그 눈동자를 보면서, 할 수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가만히 아이의 눈과 마주치면 아이는 또렷하게 엄마를 주시한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 안에 두셨다. 당신의 고귀한 목적 안에 우리를 두신 것이다. 그분의 시각 안에 있을 때 인생은 지킬 가치가 있는 존재이고, 주님의 눈동자 안에서는 우리의 허물이 없어진다.


주의 날개 그늘에 감추소서 (시17:1~8)

‘주의 날개 그늘’은 어미 새가 새끼를 보호하는 본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 믿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시고 자녀로 삼아 주셨다.

 

육신을 가진  사람도 자기 자녀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이것은 모성애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자를 희생의 제물로  주시고 바꾸신  우리이다.

 

참 부모라면  자식과 나 두 사이에 하나만 살라고 한다면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자식을 살리는 것이 참 사랑이다. 사람은 사탄의 송사 앞에 서면 자신을 가리기 위하여 방법을 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다윗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이 친히 그의 모든 허물과 죄를  덮으심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는  지성소에서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제사장도 지성소에는 아무 떼나 들어갈 수 없었다. 일 년에 한 번만 그것도 자신을 위하여 정한 제물을 드려 자신을 속죄한 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그러므로 우리는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를 가진 사람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 시은소로 덮어져 있기 때문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있자면 내 날개를 접어야 된다. 내 의가 끝나야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내 일생 쌓은 옳음보다 주가 베푸시는 한 점 은혜가 더 크다는 고백이 다윗의 생각의 변화이다.

 

이런 사람은 야곱과 같이 환도뼈가 꺾인 사람이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나가자. 자신은 없어지고 오직 에서에게 자신을 낮추고 엎드렸다.  그러자 헤치려고 왔던  에서는 야곱을 돕는 자가 되었다.

 

이미 하나님 앞에 주장하거나 판단할 수 없고, 지금까지 자기가 해왔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와주신  은혜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살았나 보다 주님이 내게 어떻게 행하셨는지만 관심을 두게 된다. 


9~15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 하리이다.

 

다윗은  주의 미쁘심을 크게 드러내 주시고  주께로 피하는 사람을 오른손으로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주님, 나를 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실 분이라는 것도 확실하게 믿고 있다. 


지금까지 주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주의 날개 그늘에 나를 숨겨 주시고, 나를 공격하는 악인들로부터 나를 지켜 주셨음을 믿고  다시 지금 이 처한 환난에서 분명히  나의 생명을 노리는 원수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지만 그들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있다. 

 

다윗은  자신이 본 그대로 느낀 대로 하나님께 진실하게 고하고 있는 것이다. 악인들의 몸뚱이는 기름기가 번드르르 흐르고 그들의 입은 오만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침내 그들이 나를 뒤따라와 에워싸고, 이 몸을 땅바닥에 메어치려고 노려볼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 그들은 마치  찢을 것을 찾는 사자와 같고,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기운 센 사자와도 같다고 하면서 계속 기도한다. 다급하게 부르짖는다. 

 

주님, 일어나십시오. 그들을 대적하시고, 굴복시키십시오. 주께서 칼을 드셔서, 악인에게서 나의 생명을 구하여 주십시오. 주님, 이 세상에서 받을 몫을 다 받고 사는 자들에게서 나를 구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몸소 구해 주십시오. 그들은 하나님께서 쌓아 두신 재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남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그래도 남아서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줍니다. 이것은 악인들이 세상에서 형통하게 됨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떳떳하게 주의 얼굴을 뵈오렵니다. 지금 이 모든 고난과 환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난다면 아니 분명히 벗어날 것임을 믿고 한 고백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수고가 끝났을 때를 말한다.   성도의 죽음은 잔다고 한다. 잔다는 것은 언젠가 깨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오실  주의 모습 뵈올 때에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넘칠 것이다. 

세상 불신자들은  인생으로 태어나서 추구할 것이 그것밖에 없는 것이 불쌍한 것이다. 우리에게 다른 내세의 축복이 없다면 세상 불신자들의  형통을 배 아파했을 것이다.

다윗은 주의 형상으로 만족한다고 하였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넘친다는 것이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꺾인 후 그곳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하였다. 환도뼈가 꺾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이것은 특혜를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 믿는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질서를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와 질서가 얼마나 온전하며 아름다운 것인지를 세상에 보여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